'티벳'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0/01 레 가는 길 - 장엄한 산 앞에 서면 (6)
  2. 2009/06/08 레에 다다르자 레 냄새가 난다 (4)
  3. 2009/05/31 만난 순간 0.5초 (4)

레 가는 길 - 장엄한 산 앞에 서면


장엄한 산 앞에 서면, 할 말을 잃는다.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이 세상에 없다. 인간의 눈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 것이 산이고, 마음에도 쉬이 담을 수 없는 것이 산이다. 한 없이 초라해짐을 느끼고, 나약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겸손함이며 앞으로 살 인생에 대한 짧은 성찰이다.

예로부터 성인이며 현자며, 우리나라의 선비는 산을 가까이 두고 살았다. 이들은 산을 가까이 두며 산을 닮으려 했고, 산에게 무엇이든 묻고 답을 얻으려 했다. 산은 말이 없지만, 어느 순간 답을 기꺼이 내어준다. 산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치고 마음이 선하지 않은 사람 없고, 마음 가짐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현인이며 선비며 의로운 이들이 모두 산을 가까이 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산은 스승이요, 만물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산은 그 모습이 장엄할수록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그러니 라다키들은 어떠할까. 감히 눈에도 담을 수 없는 산들을 끼고 한 평생을 살아간다. 눈을 뜨면 먼저 보이는 것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산이고, 잠이 들 때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산이다. 이들이 세상 앞에서 겸손하고 욕심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하면 필연일지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미약한 존재를 느끼면서 자라나는 라다키들. 어찌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겠는가.

티벳인들은 일생에 꼭 이루고 싶은, 이루어야 할 것이 성지순례이다. 카일라스산과 라싸로 가는 순례길. 어디에서 시작하던지 성지까지 가는 험난한 길을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하며 간다. 가는 길에 자갈밭이 나와도 그냥 지나는 법 없이 삼보일배를 하며, 물가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삼보일배를 하지 못하는 깊은 물가나 낭떨어지 등과 같은 지형이 나오면 거리를 계산하여 미리 삼보일배를 해 놓는다. 이들이 자신의 몸을 세 걸음에 가장 밑까지 낮추어 산 앞에, 자연 앞에 엎드리는 것은 그들 곁에 있는 산 떄문이다.

티벳인들이나 라다키들이나 세계에서 제일 높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그런 이들이 어찌 남의 것을 탐하거나 해를 입이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산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고, 미약한 존재임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들이다. 어찌보면 인간이 가장 이해하고 깨달하여 할 것을 미리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그들이 성인이며, 현자가 아닐까.

나라는 사람이 그들에 미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어쩌면 평생을 살아도 그 곳에서 막 자라난 아이만도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잠시나마 그들이 일생을 두고 사는 그 곳에, 그들이 가까이 하는 그들의 산 앞에 서서 겸손해지며 짧은 성찰, 거룩한 마음을 잠시나마 가지고 지금 이 순간 다시 기억과 느낌을 되새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마움, 감사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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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에 다다르자 레 냄새가 난다


500km 남짓한 거리를 서른시간 남짓 굽이굽이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어느새 비포장 도로는 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잘 깔리어진 아스팔트 도로는 유명해진 레에 들어섬을 알 수 있었다. 몸은 한결 포장된 도로에 편안해졌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아마도, 헬레나 노르베리의 <오래된 미래> 의 레 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고되더라도 현대 문명의 흔적이 아닌, 고유의 레 냄새가 먼저 맡기를 바랬던 것이다. 레에 다다르자 나를 맞은한 것이 라다크인들이 하루하루 오랜 세월을 밟아가며 만들어진 흙 길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번씩 밟고 다니는 아스팔트였다는 것이 못내 불편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나치는 시야에 다라크 냄새나는 풍경들이 드문드문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티벳 문화의 모습들. 본 요리에 앞서 에피타이저를 내놓은 것 같다. 간간히 티벳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보였다. 황량한 저 곳에서 뭐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순간 그들을 지나치고 말았다. 드디어 레인가.

몸을 편안하게 한 아스팔트의 이질감이 역설적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다행이었다. 그래도 레에 다다르니 레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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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순간 0.5초


아니, 0.3초도 안되었을지도 모른다. 만났다는 말을 쓸 수가 있을까.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를 알아차리지도 못했을거다. 그녀의 시선은 내가 스치던 그 순간 다른 곳을 향했기 때문에. 보았다면, 내가 타고 있던 지프만을 봤을테지.

그렇다 하더라도, 만났다는 말을 쓰면 안되는 걸까. 나 또한 그녀의 얼굴도 눈빛도 보지 못했고, 인생의 그 순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고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나는 그 긴 인생의 한 순간조차 소중하다. 그러니, 1초가 안되는 내 기억만으로는 절대 꺼내어지지 않을 기억이고 찍힌 사진으로만 간신히 이렇게 짜내진 기억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더 없이 소중하다. 짧으면 짧으면 역설같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도저히 내가 가진 재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렇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뿐. 그러니,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바라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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