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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6 나는 프라하의 까를교를 걸었다 (1)

나는 프라하의 까를교를 걸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을 읽다가 속에 매슥거려 읽기를 중단 했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읽었을 땐 내가 너무나도 어렸기 때문에 그러한 관계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프라하에 대한 기억이라곤 그 것이 다였다. 그 이후에 시간이 지나고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쳤고, 각종 CF 에 등장하는 장소로 사람들에게 다가왔지만 나는 TV 를 가까이 하지 않는 탓에 얼핏 들려오는 프라하의 '로맨틱함' 이란 이미지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카를교를 걷는 순간, 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 이해할 수 없었던 관계들을 모조리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체한 것처럼 명치를 눌렀던 것들이 긴 한숨과 함께 내려가는 듯 했다. 당시에는 어째서일까, 왜 그런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거지 라고 도저히 감당히 안되었던 수 많은 것들이 내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것들이 온전히 이해가 되어지는 것은 아닌것 같다. 그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것. 포용도 아니고 이해도 아닌 것들이 내려가는 그 느낌. 마치 이제는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놓치 못하든 놓치 않고 있든 그런 것에는 관계없이 그렇게 내려가는 것이다. 맥이 풀려버리는 순간이며, 공허해 지는 그런 느낌.

시간이 흐르면 이내 무뎌진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왜 그런 것에 내 마음까지도 맡겨버려야 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한 떄는 그러는 것이 너무 싫어 잡고 있으면 힘들 것을 알면서도, 시간에 나를 놓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어서 억지로라든 남들 모르게 잡고 있었던 적이 있다. 어리석은 후회는 되지 않는다. 시간에 맡겨지는 것은 당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슬픔을 오랜 시간동안 잘게 쪼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그런 것이 싫다.

턱 하고 그런 것들이 내려가는 순간, 나는 더욱 성숙한 것인가 아니면 더 무뎌지는 것일까. 나는 더욱 무서운 괴물이 되어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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