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7/06 처음엔 그를 경계했다
  2. 2009/01/27 히말라야에 휘날리는 룽다 (5)
  3. 2008/12/21 인디아게이트에서의 이기의 사진

처음엔 그를 경계했다


뿌리는 인도 동부 오리샤주에 위치한 작은 어촌 도시다. 도시라기 보다는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작은 곳이다. 성수기 시절이 오면 인도 현지인들이 허니문으로 찾고 휴향오는 아주 조그만 곳이다. 이 곳은 도로라기 뭐한 우리나라 왕복 1차선 정도 폭의 거리를 쭉 두고 있는 마을인데, 여행자들과 보통 인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과 빈민들이 거주하는 두 곳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빈민들이 거주하는 곳은 길가의 끝자락 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다아 가까운 곳에 움막들을 지어놓고 무리 지어 살고 있다. 가이드북에서는 왠만하면 이 쪽으로 가지 않는게 좋다고 말하고 있고, 여행객들이나 현지인들도 그런 충고를 가끔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 이 빈민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것 같았다. 그러하여 어른들은 바다에 나와 고기를 잡고, 아이들은 해변가에서 놀고 있다.

그를 만난 것도 해변가에서였다. 그는 갈치 같아 보이는 생선 몇마리를 낡아 찢어질 것 같은 가방에 넣어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는지 내가 먼저 걸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2년이 조금 지났다고 해도, 이 놈의 기억력은 너무나 좋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도중 메모와 일기를 잘 썼던 것도 아니라, 유일한 단서는 사진 뿐이다.

몇마디를 나누고 난 다음 그가 내게 한 말은 우리 집에 가자는 것이었다. 현지인의 집에 초대 받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난 처음에 경계했다. 그가 사는 곳은 빈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온지 하루던가 이틀정도 지난 후였지만, 그 쪽으론 가본 적이 없었다. 해변가에서 그 쪽을 바라만 봤을 뿐이었다. 대낮에 이런 초대를 받았어도 조금 두려움을 갖고 경계를 했었을건데, 내가 그를 만나 그가 나에게 초대한 시간은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날이 어두워져 껌껌해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나는 더욱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 반, 설레임 반이었다. 바라만 보던 그 곳으로, 경계를 갖고 있던 곳으로 초대 받아 간다. 그러나 두렵다. 조금 두렵다. 결국 나는 가보기로 했다. 그가 정말 나를 초대하고 싶은 생각이 그의 눈에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는 집은 빈민촌에 있었지만, 움막은 아니었다. 좋지는 않지만 번듯한 건물 안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빈민촌에 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마도, 여행객들은 많이 보지만 자신들이 사는 구역으로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했던 것 같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 곳의 사람들에게 나는 환대 받았다. 그런 나를 자신이 데려왔다는 명분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을 그는 물리쳤다. 나를 보자 수줍어 하던 그의 아내와 신기해하던 그의 아이를 나도 보고 수줍어 하고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내에게 짜이 한잔을 내어오라 하였다. 내어 온 짜이 한잔 내게 권유하던 그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경계를 갖게 됐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지겹게 들었던, 인도인들이 내어주는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거기엔 수면제나 안좋은 것들을 탄다는 얘기 말이다. 처음에 초대를 받고 경계를 갖다가 풀고 와서 환대 받으며 긴장을 낮추었는데, 다시 긴장감이 몰려왔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간에 나 홀로 위험하다는 곳에 와, 현지인이 내어 준 짜이를 마신다. 그 것은 안좋게 생각을 하면 무척이나 안좋았던 상황이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눈을 봤다. 불순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로 짜이잔을 받아 몇모금에 맛있게 마셔버렸다. 다 마시고 난 다음의 그와 가족들의 표정. 너무나도 만족해하는 모습에 긴장도 경계심도 풀려버렸다. 그래, 끝가지 거절하지 않길 잘했다. 정말 잘한거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난 여행객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악의나 불순함을 찾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완전하게 경계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어둠이 내려 깔리기 전에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에게 말을 했고 그는 너무나도 아쉬워 했다. 떠나기 전,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무언가라도 주고 싶어, 나는 그들에게 조그만한 선물을 했다. 의심과 경계를 풀었던 나의 불순함 마음에 대한 미안함과 나에게 보내준 환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만큼 그들에게 보답이 되었을진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을 담아 주었던 선물이기에 아직도 간직하고 있길..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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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휘날리는 룽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멀리 고향까지 내려간 분들은 귀성길에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렷을 때 장장 10시간이 걸리면서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던 적이 있는데, 작은 체구에다가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자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게는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차로 한시간이면 가는 거리에 있어 막힐 염려도 없어 걱정이 없지만, 귀향길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는 처음으로 톨게이트에 막혔따. 염치없는 운전자들이 하이패스도 달지 않았음에도 하이패스 차선(1차선)으로 타고 오다가 톨게이트 입구에서야 일반 티켓 차선인 2차선으로 끼어들어 심각한 정체가 발생했다. 난 2차선에 있었는데, 괜히 시간과 기름낭비를 한 셈이다. 어제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급 열이 받는다.

오랜만에 첫 여행, 05-06 년의 인도와 네팔 여행 사진을 꺼내어 봤다. 이 사진들은 히말라야 푼힐 코스를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휘날리는 룽다 뒤로 보이는 설산은 안나푸르나(8,091m)와 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르(6,998m)다. 룽다는 불교 경전이나 진언을 오색 깃발을 줄로 엮어 바람에 날리게 한 것이며, 그들의 소원이 담겨 있는 것이에요. 깃발에 쓰인 문구들이 바람을 타고 널리 퍼지게 하려고 룽다는 높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 며칠 동안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이 말이 흐르고 떠다녔을 것이. 그래서인지 설에 느껴지는 새해, 복, 소망이 왠지 티벳의 룽다를 생각나게 했다. 우연일까. 아, 어째됐든 룽다의 오색깃발의 좋은 말들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면서 그들이 보다 높은 곳에 룽다를 만들어논 마음과 우리 설에 룽다처럼 겉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입에서 마음으로 나온 좋은 새해 인사, 격언, 말들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함께 살아가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지금도 세찬 겨울 바람에 휘날려 좋은 문구들을 히말라야 룽다의 깃발은 널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날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좋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날아다니는 설이 되었기를 바라고, 설이 지나도 항상 좋은 말들이 우리 주위를 날라 다녔으면 좋겠다.


+ 다들 설은 잘 보내시고, 새해 좋은 인사 많이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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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게이트에서의 이기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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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게이트에 도착 해, 입구에서 만난 아이들. 동행들은 저만치 갈 동안, 난 한 동안 이 애들과 사진을 찍었다. 기억으론 사진 외에는 별다른 소통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에게 환한 미소나 인사를 건냈던 기억도 없던 것 같다.

이기였을까. 단순히 그들을 사진의 피사체로만 인식 해버렸던가. 그래도 그 아이들은 즐거웠던 것 같다. 사진을 찍히는 데에. 이방인의 카메라에 담기는 데에. 한것 모델로서 즐거워했던 것 같다. 왠지, 이 때 찍었던 사진들은 후회스럽다. 이 아이들 중에 아주 어린 애가 한 명 있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왠지 마음이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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