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9/01/29 교감이 교차하는 그 순간 (4)
- 2009/01/28 Candid 사진 찍기의 어려움 (7)
- 2008/12/12 아이들에게 나는 (2)
교감이 교차하는 그 순간
travel/08 India 2009/01/29 18:41
Candid 사진, 곧 사람이 담긴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을 담는 사진 찍기의 어려움은 누구나 직면한다. 선천적으로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 때 찾는 것들이 사진가를 위한 책이며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 찍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다. 사진 잘 찍는 유명한 포토그래퍼들은 사진 잘 찍는 방법에 대해서 기술적, 심리적 방법 등 많은 방법들에 대해 책과 구언 등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음에도 제일 중요하고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피사체와의 '교감' 이다.
그런데 참 이 피사체와의 교감이라는게 말로서는 쉽지만, 너무나 어렵다. 피사체라하면 동물, 풍경, 사람, 정물 등 모든 찍히는 대상이 된다. 모든 피사체와의 교감은 어렵지만 특히나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피사체는 사람이다. 이는 유일하게 사람만이 찍히는 행위에 대해서 인식하고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교감이라 하면 찍는 행위에 대한 무언의 허락이고도 볼 수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예의가 없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먼저 예의를 차리고 허락을 구하는 것은 이미 Candid 사진이라고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미 그 때가 되면 피사체가 되는 사람은 candid 의 정도를 넘어서는 인식을 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진가가 포착하려는 순간, 결정적 순간을 포착함으로 유명한 앙티 까르띠에 브레송의 그 '순간' 은 이미 지나간 후가 되버린다.
제대로 사진을 찍어 보지도 못한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 감히 사진에서 '교감' 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쓴다고 사진 꽤나 찍는 사람들은 내게 삿대질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든 글을 쓸 때 내가 느낀 위주로 쓴다. 느끼지도 않았고, 없던 일을 있는 일처럼 허세나 부리려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올리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나 자신이 사진을 잘 찍는다고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카메라로 가끔씩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일 뿐이다.
다시 말하려는 요점으로 돌아가자. 내게 '교감' 은 앞에서 말했다 싶히 찍는 행위에 대한 대상이 되는 사람의 무언의 허락이다. 그 순간을 참 느끼기는 어렵다. 나도 사실 그렇게 많이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몇번이라도 속으로 "아!" 하는 순간이 느꼈고 그런 순간들이 대부분 같은 느낌이었다. 이 사람을 마음 것 찍어도 되겠구나. 이 사람은 내게 허락을 했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이 사진 또한 교감을 느꼈던 사진이다. 타지마할을 나와 입구에서 마주친 할머니들로, 그녀들을 찍으려던 처음에는 살짝 머뭇거렸다. 그러나 나는 이내 마음을 먹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나를 이내 발견하고 나를 가리키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하고 수줍은 미소를 내게 보여줬다. 이 사진의 가운데 할머니는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언성을 높이며 면박을 줄 것 같지만, 역시나 미소를 보여줬다. 지금 이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의 느낌은 내게 '교감이 교차하는 순간' 이었다. 표정은 저리 험하지만, 무언의 수긍과 허락을 느꼈었다.
사진 찍는 행위에서 피사체와의 '교감' 을 단순히 '무언의 허락' 으로만 해석할 순 없다. 사진 찍는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한 예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들이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교감을 말한 것은 그들 곁에서 오랫동안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고 그들과 하나로 동화되는 그러한 것을 말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교감은 Candid 사진에서, 또 그 중 인물 사진에서 '교감' 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진을 찍는 행위 속에서 분명히 무언의 허락을 느낄 수 있는 '교감이 교차하는 순간' 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감은 말로 글로 아무리 표현해도 설명 할 수가 없다. 내가 말하는 교감을 아는 방법은 오직, 사진가가 몸으로 상황 속에서 몸으로 느껴보는 방법 뿐이다.
Candid 사진 찍기의 어려움
travel/05-06 india, nepal 2009/01/28 14:59
요즘 훔쳐 찍거나 찍다가 걸린 이야기를 몇번 썼다. 풍경이 아닌 사람을 찍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피사체를 삼아 찍는 것은 그 사람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성립이 된다. 하지만 찍는 상황으로 인해 candid 사진을 찍거나 보도 사진, 여행 사진을 찍을 때면 동의를 얻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기자들 같은 경우에는 보도 목적의 사진을 찍는 경우에는 초상권이라던지에 대한 문제는 일반인들보다는 덜 하다. 과거 매체가 발달하지 못했을 때는 초상권과 같은 문제가 그리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발달로 초상권의 사회적인 문제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또 다른 사진 찍기에 대한 문제는 찍는 사진가의 목적에 맞게 상황이 변질되고 왜곡 된다는 것이다. 사진의 피사체가 자신이 된다면 상관 없지만, 노숙자를 찍어놓고 제목에 '고단한 삶' 이라던지, 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유포하는 사진 찍기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사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졌다.
이런 거리 사진과 같은 Candid 사진 찍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사진을 찍고 나서 찍히는 사람이 화를 내 수난과 면박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정말 냉담한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만약 면박을 당하더라도 그 상황을 낙천적으로 모면할 수 있는 성격의 사진가들이 좋은 Candid 사진을 찍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Candid 사진을 찍는 일은 이처럼 힘들다. 이는 매체의 발달이 사진사에 의해 변질되고 왜곡된 목적의 쉬워진 유통경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 인심이 각박해 진 것이다. 그러나, 매체가 발달하지 못해 사진의 해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지 않는 외국의 경우에는 Candid 사진 찍기가 수월하다. 그것은 비단 매체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이 사진 찍는 것에 대해서는 신기하거나 좀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인도 같은 경우는 인도인들이 워낙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진가들이 인도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도 같은 경우도 문명과 매체에 대해 깨친 지식인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내 경험에서 보자면 이른 바라나시 아침에 가트에 나가 사진을 찍는 데, 가트에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한다. 딱히 내가 어떤 여성을 클로즈업 해서 찍어대고 있지 않고, 광각으로 넓게 가트 풍경을 찍고 있었음에도 어느 남자가 다가와 왜 우리나라 여성들을 찍냐고 찍어가서 니네 인터넷에 올리려고 하느냐, 무슨 목적이냐면서 내게 면박을 주는 일이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학생이라고 나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너희들 문화를 알고 알리려는 것 뿐이라고 대답을 하고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예전에는 인도여성 사진을 잘 못 찍으면 몰매 맞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좀 의기소침 해졌다. 사진을 찍을 마음이 도무지 들지가 않았다. 지금 사진 폴더를 보면 그 일이 있고 난 후, 사진이 그 전보다 사진의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자연스런 Candid 사진 찍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럴 때, 나는 어떠해야 하는가. 면박 당할 일을 두려워하며 사진 찍기를 머뭇거려야 하는가. 찍고 싶은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데 말이다. 요점만 말하자면, 난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 친구의 얘기를 빌려보자. 친구가 시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어느 아주머니에게 왜 찍냐며 수난을 당하면서 뺨을 한 대 맞았다고 한다. 원래 성격이 있는 친구라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이 친구가 거기서 대판 싸웠겠구나 했는데, 어쩐일로 그 아주머니에게 웃으면서 "다른 쪽 뺨도 맞으면 사진 찍게 해주실래요?" 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친구의 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웃고 말았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그 친구에게 뺨까지 맞았는데 화나지 않났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너무 화가 났지만, 그렇게 행동 했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불리하던 그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상황으로 이끌어 나간 것이다.
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그런 임기응변의 지혜와 용기가 나왔을까. 언제나 사진 찍기가 두려워지는 순간이면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상황을 변질시키고 왜곡시키고 피사체를 해할 목적이 없이 단순히 Candid 사진이 목적이라면,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만들어가자. 아무리 각박해졌다 하더라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라는 옛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 다음에는 '교감이 교차하는 그 순간' 이라는 주제로 비슷한 맥락에서 이 글에 이어 써볼까 합니다. :)
아이들에게 나는
travel/08 India 2008/12/12 12:11
내 여행 사진을 보면 아이들 사진이 제일 많다. 아이들은 쉽게 친해지고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카메라를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나와 카메라를 호기심의 대상, 자신의 일생과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고 신기한 그 어떤 것처럼 바라본다.
그 순간,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면 그들에게 나는 어디 먼 세계, 마치 만화에서 나오는 그런 다른 차원이나 세계에서 온 상상 속의 캐릭터나 인물이 자신의 현실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들에게 나는 친구다. 텔레비젼이나 만화에서 본 만지고 대화하고 느낄 수 없던 그런 대상이 현실 속으로 자신의 앞에 걸어와 말을 건네는 것이다. 피부로 와닷고 만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눈으로만 볼 수 있었던, 말로만 들었던 그런 먼 나라의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본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캐릭터들과 닮았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그들에게 친구다. 나 또한, 그런 대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친구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현실 속에서 직접 다가서서 말을 건네고 그들과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도 찍고 했기 때문에, 진짜 친구가 된 것이다. 그들의 상상 속에서, 텔레비전 속에서 나는 걸어나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 것이다.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이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
그들은 나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들에게 형제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 할 것이다. 피부가 하얗고 멋진 사진기를 든 외국인이 나한테 말을 걸고 사진도 찍어줬다고. "나 외국인 봤다~ 사진도 찍어줬다~ 너네들도 만나봤어?" 나중에 찍은 사진을 주기라도 한다면 그 아이는 또래 아이들에게 부러움과 경외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마치 내가 아이였을 때, 우리가 아이였을 때, 다른 또래 친구들이 보지 못한 만화 시리즈를 보았다던가, 인기있는 만화의 한정판 프라모델을 가진 아이를 보는 시선 말이다.
아이들을, 아이들과 함께 찍는 사진은 즐겁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함, 아주 조금의 미소를 보이거나 말을 건네도 수줍어하고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 아이들을 보면. 하지만 때로 그들의 미소를 볼 때, 나의 어릴적과 이젠 속물이 되어버린 나를 반추하면서 씁쓸해 지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