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는길'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9/10/01 레 가는 길 - 장엄한 산 앞에 서면 (6)
  2. 2009/09/20 레 가는 길 - 사추에서 본 소 (10)
  3. 2009/09/12 오래 됐을 법한 레 가는 길 사진 (2)

레 가는 길 - 장엄한 산 앞에 서면


장엄한 산 앞에 서면, 할 말을 잃는다.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이 세상에 없다. 인간의 눈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 것이 산이고, 마음에도 쉬이 담을 수 없는 것이 산이다. 한 없이 초라해짐을 느끼고, 나약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겸손함이며 앞으로 살 인생에 대한 짧은 성찰이다.

예로부터 성인이며 현자며, 우리나라의 선비는 산을 가까이 두고 살았다. 이들은 산을 가까이 두며 산을 닮으려 했고, 산에게 무엇이든 묻고 답을 얻으려 했다. 산은 말이 없지만, 어느 순간 답을 기꺼이 내어준다. 산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치고 마음이 선하지 않은 사람 없고, 마음 가짐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현인이며 선비며 의로운 이들이 모두 산을 가까이 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산은 스승이요, 만물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산은 그 모습이 장엄할수록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그러니 라다키들은 어떠할까. 감히 눈에도 담을 수 없는 산들을 끼고 한 평생을 살아간다. 눈을 뜨면 먼저 보이는 것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산이고, 잠이 들 때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산이다. 이들이 세상 앞에서 겸손하고 욕심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하면 필연일지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미약한 존재를 느끼면서 자라나는 라다키들. 어찌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겠는가.

티벳인들은 일생에 꼭 이루고 싶은, 이루어야 할 것이 성지순례이다. 카일라스산과 라싸로 가는 순례길. 어디에서 시작하던지 성지까지 가는 험난한 길을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하며 간다. 가는 길에 자갈밭이 나와도 그냥 지나는 법 없이 삼보일배를 하며, 물가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삼보일배를 하지 못하는 깊은 물가나 낭떨어지 등과 같은 지형이 나오면 거리를 계산하여 미리 삼보일배를 해 놓는다. 이들이 자신의 몸을 세 걸음에 가장 밑까지 낮추어 산 앞에, 자연 앞에 엎드리는 것은 그들 곁에 있는 산 떄문이다.

티벳인들이나 라다키들이나 세계에서 제일 높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그런 이들이 어찌 남의 것을 탐하거나 해를 입이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산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고, 미약한 존재임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들이다. 어찌보면 인간이 가장 이해하고 깨달하여 할 것을 미리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그들이 성인이며, 현자가 아닐까.

나라는 사람이 그들에 미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어쩌면 평생을 살아도 그 곳에서 막 자라난 아이만도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잠시나마 그들이 일생을 두고 사는 그 곳에, 그들이 가까이 하는 그들의 산 앞에 서서 겸손해지며 짧은 성찰, 거룩한 마음을 잠시나마 가지고 지금 이 순간 다시 기억과 느낌을 되새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마움, 감사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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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가는 길 - 사추에서 본 소


지프를 다고 레에 가려면, 하룻밤을 묵고 넘어간다. 새벽시간에 출발하여 쉴새없이 달려 꼬박 하루만에 레에 도착하는 버스와는 달리 지프는 몇명이 모여서 타고 간다. 주로 레에서 마날리로 넘어 온, 지프차량을 물색하여 넘어간다. 나와 일행은 마날리에서 만난 한국인 형과 함께 지프로 가게 됐다.

아침에 출발하는 지프는 하루종일 달려도 레에 다다르지 못한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레 가는 중에 하룻밤을 묵고 가야 한다. 어느 길이나 그렇듯 길이 열리고나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머무르기 좋은 곳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레 가는 길, 묵어가는 그런 곳이 바로 사추였다.

사추에서 하룻밤을 묵기 위해 어둠이 내리 깔리기 전까지 잠간 동안의 빛이 있는 여유가 있었다. 멀리는 가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 볼 정도의 시간의 여유였다. 주변은 온통 벌판이었고 그 뒤엔 산이 둘러쌓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건 그다지 없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눈에 익은 누런빛의 소. 슬쩍 다가가 보았지만, 누렁이라고 불릴만한 모습을 가진 녀석은 아니었다. 왠지 사나울 것만 같았던 눈매와 뿔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누렁이의 선량해 보이는 눈망울이 아니었다. 그래도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누런빛만으로도 보아오던 누렁이와 같은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새 하늘과 맞닿은 사추가 금방 날이 저물었다. 해는 서쪽 산 너머로 넘어갔고 어둠은 금새 짙게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했다. 빛이라고는 천막에서 새어나오는 조그만 빛 뿐이었다. 나는 허름한 천막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사추, 동질감이라고는 느끼지 못할 것만 같은 그 곳에서 사소하지만 나는 누런 소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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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됐을 법한 레 가는 길 사진


요상하다. 찍은 기억이 없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꽤나 오래 됐을 법한 바랜 듯한 느낌의 사진. 어떻게 찍었을까. 분명히 2008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지프를 타면서 불편한 뒷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인가. 지프에서 내려 보았던 풍경 속에 이 장면은 내 기억에 없다. 덜컹거리며 뒷창문을 보며 달리던 지프에서 찍었나 보다.

마치 옛날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랜 옛날, 소달구지를 타고 타녔을 법한 시절의 느낌. 나는 그러한 시절을 겪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명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는 기분이나 감정을 느낄 때, 나는 무척이나 답답해진다.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지만, 기억해 낼 수도 없고 이해하려 할 수록 멀어진다. 형체가 없기에 더욱 파악하기가 힘들다. 기억에도 없고 겪지도 못했던 추상적인 경험을 소고 하려드는 나는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모를 그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이 느낌이 떠오르는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일까.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는 장면도 없다. 그저 막연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느껴지는 대로 내 자신이 표현 할 수 있는대로 고작 글을 쓰는 일 뿐이다. 내겐 이 것이 가장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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