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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03 나는 모든 것이 명확해 지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5)
- 2008/01/20 인도에서 나는 6년만에 세번 울었다 (5)
- 2007/11/20 눈물에 관하여
나는 모든 것이 명확해 지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광대들은 어찌하여 그 높은 곳의 줄 위에서 균형감을 유지 할 수 있을까. 뭐가 더 어려울까. 줄 위의 균형과 삶의 균형. 분명 위험한 삶의 줄 위에서도 광대들의 줄 위에서처럼 신기할정도의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 어찌하면 그런 균형감을 가질 수 있을까. 나도 광대처럼 살 수있을까. 삶 이라는 줄 위에서 광대들의 놀음처럼 마치 비웃듯이 그럴 수 있을까.
런던에 와서는 잠을 더욱 못 자는 듯 하다. 깊게 잠이 들지 못하는건 더 심해진 듯 하다. 지친 몸으로 학교를 가고 다녀와선 꼭 쉬어야지, 낮잠을 조금이라도 자야지 하면서 잠을 청하지만, 몇시간이 지나도 잠이 들지 못하고 결국은 일어나버린다. 도대체 언제 잠을 자야 하는 건가. 그래서인가. 눈을 뜨는 일이 힘들다. 눈이 매말라오고, 마른 눈을 뜨고 있기 힘들어 눈물을 흘려보지만 그 동안의 메마른 눈을 적시기에는 부족한지 금새 말라 다시 눈을 뜨기가 힘들어진다.
모든 것이 잡히지 않는다. 마른 눈을 비비지만, 뜨고 있는 것 조차도 힘든 것이 어찌하여 앞을 볼 수 있을까. 갈수록 눈이 멀어만 가는 것 같다. 이 상태로라면 인도에 가더라도 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울면서 눈물을 흘려댄다면 그 건, 살기 위해 앞을 보기 위해 흘리는 눈물일 것이다. 나는 그런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이 명확해 지는 제대로 눈을 뜨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그 시간을 말이다.
인도에서 나는 6년만에 세번 울었다
2007/11/16 - [nothing/thought] - 눈물에 관하여
6년전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렸던 눈물. 아버지와의 통화를 하면서 어느새 보니 뺨에 눈물이 주룩주룩 꽤나 많이 흘러내리고 있다고 느꼈던 기억. 그 이후에는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그리고 6년 후 나는 인도 바라나시 게스트하우스 방에서 세번을 울었다.
이번 인도여행은 정말 무모하고도 계획없이 떠났다. 교통사고 후 완쾌되지 않아 불편하고 위험할지도 모르는 수 많은 쇠핀을 박고 있는 다리 때문에도, 다른 건강상태 때문에도. 하지만, 나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떠났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타이밍과 여건이 정말 안맞았나보다. 인도로 가게 된 것도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티벳과 차선의 파키스탄 루트가 건강상의 문제와 파키스탄 정세로 인해 결국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태국과 동남아 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두번째로 간 인도는 첫여행의 느낌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첫여행의 인도의 설레임도 환상도 이미 모두 깨져버렸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지를 못했다. 내가 변했기 때문일지도.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보기가 싫었다. 치근덕거리는 것도, 귀찮게 하는 것도, 여행자를 돈으로 보는 것도,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여행자의 반응은 대개 극단적 두가지로 나뉜다. 너무 좋은 것, 그리고 너무나도 싫은 것. 나의 경우에는 두가지 모두 경험한 셈이다. 첫번째 여행때는 너무나도 좋았던 인도, 그리고 다시 찾은 인도는 너무나도 싫었다.
왜. 왜 나는 인도가 그리도 인도가 싫었고 이번 여행이 무의미 했을까. 치열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있던 곳에서의 치열한 삶 끝에 마치 여유라도 부리듯 여행을 온게 아니었기에, 그랬기에 여행의 설레임도 없는 그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 비어버린 공간이 미래에 대한 불안만 가증시켰을까. 나는 모르겠다. 좀 더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나는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보상을 받는 듯이. 나는 도피하듯이 그렇게 떠나왔나보다. 그저 '떠나야 하기 때문'에 떠나왔다보다.
첫 인도여행때 여행의 막바지에 현지인이 준 음식을 먹고 탈이 심하게 나 귀국때까지 힘들게 인도에서 견뎠고, 한국을 와서도 일주일을 집에서 그리고 일주일을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하루에도 몇번씩 맞아가면서 치료를 했을 정도다. 1급 병원균 때문에 아팠던 것은 아니었지만, 난 워낙 장이 좋지 않아 한번 탈이 나면 죽을 것처럼 심하면 몇주간을 그렇게 앓아 눕는다. 그 때문에 큰 수술을 두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도 여행에서는 그 아픔이 일찍 찾아왔다. 여행의 무의미함과 싫은 인도에 죽을 것처럼 아프기까지 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일주일정도를 아무것도 못먹고 게스트하우스 방에만 거의 쳐박혀있었다. 골방같은 게스트하우스의 방, 누수되었던 적이 있어보이는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시멘트벽이 떨어진 듯한 천장의 방. 나는 인도 바라나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6년만에 세번을 울었다.
1월 7일. 내 생일이다. 나는 내 생일에 그렇게 여유를 두거나 의미를 찾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일부러 생일을 치루거나 파티를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런 생일에 너무나도 아팠다. 생일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지만, 생일부터는 더 심해졌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항공 스케쥴을 변경해 돌아가기 위해 공항을 갔는데 도중에 차가 막혀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래도 출발시간이 40분정도 남아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보딩패스를 받지 못해 떠나가는 비행기를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다. 직원들에게 사정을 말했지만, 늦었다는 말만 할 뿐 누구하나 제대로 봐주질 않았다. 이때, 인도에 대한 회의와 실망과 분노가 치밀었다. 인도의 그 특유의 느림이 너무나도 싫었다. 결국 있는 힘을 짜내 비행기를 타러 갔지만 허무하게 타지 못하고 기진맥진해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침대로 엎드려 쓰러졌다.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는데, 서러워졌다. 첫번째 울음은 생일에 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골방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너무나도 아펐기 때문에 서러웠다. 태어난 날에 축복은 커녕 고통스러웠기에. 두번째 울음은 혼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실은 그 날은 인도에서 친해진 이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내가 7일에 떠나기 때문에 그들도 맞춰서 7일에 떠나게끔 열차표를 예약했었다. 결국 나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누군가와 말할 힘도 없었기에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 말할 상대를 만든다는 것도 안됐기 때문에 내 몸상태와 걱정을 해주어 방으로 찾아와 주는 이 또한 없게 된다는 것. 하루내내 지극히도 우울하게 만드는 그 방에서 혼자서 아파해야 했다. 세번째 울음은 한국의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힘들때면 옆에서 날 돌보아줄, 내가 원한다면 내 옆에 있어줄 사람들이 보고싶어 울었다. 그렇게 아펐고 서럽고 그리워 인도 바라나시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 엎드려 소리 내 울었다. 6년만에..
울고나니 몸은 여전히 아펐지만 마음은 조금이나마 나아졌던 것 같다. 견디고 나면, 견뎌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픈것도 나아질테고 소중한 사람들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견뎠다.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견뎌 돌아왔다. 지금도 몸이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는 그렇게 바라고 돌아오고 싶던 한국의 내 방에 앉아있고 소중한 사람 또한 같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회상하지만, 너무나도 싫고 갈때마다 극심히도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인도.. 다시 그리워진다. 그렇게도 싫어했것만 다시 인도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는 모르겠다. 인도에 있는 내내 생각해 봤지만,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프고 싫었지만 다시 언젠가 가게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6년만에 소리 내 서럽게 울게했던 인도. 날 울리게 한 곳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
눈물에 관하여
어쩌다가 눈물에 관해서 생각하게 됐다. 내 눈물에 대해.
무슨 말을 하려고 눈물이 생각이 난 것일까. 어떤 것을 떠올리다, '내 눈물' 까지 생각이 미친 것일가. 생각해보아도 잘 모르겠다. ''눈물' 에 관해 말 하려고 하는데, 할 말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눈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눈물이 없는게 아니고 흐르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눈물이 많다. 조그마한 감동에도, 슬픔에도 감정의 사소한 변화에도 눈물을 머금는다. 하지만, 흐르지 않는 눈물이다. 내 눈물의 성격은 딱 거기까지이다. 눈물이 고이고 흐르지 않는 그 정도. 그래서 나는 내 눈물이 좋다. 흐름과 고임의 모호한 경계. 눈물은 나오지만 흐르지 않는, 적절한 감성과 절제의 이성의 타협점. 그 것이 나이고 내 눈물이다.
마지막으로 눈물을 눈물답게 흘려본 기억이 언제였더라. 기억으로는 아마도 고등학생 때 마지막 여름을 지나고 있었을 때 같다. 그 때, 흘렸던 눈물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렸었다.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힘들어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안쓰럽고 화나고 해서 아버지에게 윽박지를면서 흘렸던 눈물을 한참후에야 느꼈었다. 그게 내 기억 속 '눈물'이다. 그 이후에 진짜 눈물을 흘린적은 없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내 눈물이 아닌, 나 아닌 '타인의 눈물' 에 대해서는 어떨까. 나는 타인의 눈물을 내 눈물보다 더 보지 못한다. 그것이 내게 소중한 사람의 눈물이라면, 내 눈물보다 더 슬픈 일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그걸 보는 것이 나에게 고통이고 견딜 수 없는 슬픔이다. 나는 그럴때면 지레 피해버리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물의 근원이 되는 요소를 차단해버리던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웃음이 터지게끔 우스꽝스럽게 '쇼'를 해버리곤 한다.
눈물은 희극과 비극의 '대명사' 격이다. 비극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희극에도 중심선 상에 있다. 희극의 중심은 '웃음'과 '미소' 겠지만, '눈물' 또한 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눈물은 희극과 비극의 대명사 '격' 이다. 그래서 나는 눈물의 그런 매력이 좋다. 어느 쪽, 한 쪽에만 치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눈물도 그렇다.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타협, 어느 쪽에도 치우쳐 있지 않다. 때에 따라서 조금씩은 한 쪽으로 흐르기도 하겠지만.
어쩌다가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생각이 드는 대로.. 글도 처음 생각이 들었을 때 흐름을 이어가면서 썼어야 했는데, 며칠간은 다른 생각으로 흐름이 끊겨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어쩌지. 처음에 쓸 땐, 의지나 어떤 강압적인 생각이 아닌 자연스럽게 글을 썼지만, 하루이틀 지나다보니 쓰던 글을 마무리 해야 그런 의무감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자연스럽고 마음에도 들지 않을지도.
역시 모든 일엔 타이밍과 흐름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