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즈음 되었을거다. 인도에 처음 가기 위해 비자를 받으러 갔던 4년 전 12월,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처음 이었다. 한번씩 찾아오는 불면증으로 혹은 수면패턴이 뒤바껴 있을 때였다.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일찍 서울로 출발해야 했는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더군다나 눈에 염증 때문에 눈은 퉁퉁 부어올랐고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다.
광주에서 1시간을 달려 엄마와 할머니를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운전을 한지는 1년 반정도지만, 서울을 운전해서 간 적은 없어 조금 긴장이 됐다. 잠을 한 숨도 못자고 눈은 부어오르며 거센 비가 내려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엄마와 할머니가 타고 있어 몇시간을 운전하는 내내 커피를 쉬지 않고 마시고 차가운 음료는 얼굴에 대고 때론 꼬집고 얼굴을 치기도 하면서 졸음을 참았다.
서울 도착은 생각보다 빨랐다. 서울의 교통사정과 지리를 몰랐기 때문에 헤메고 막힐 것을 걱정하여 좀 빨리 출발했는데, 한번도 헤메거나 막힌 적 없어 예정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을 했다. 너무 일러 결혼을 준비하는 친척들도 아직 오지 않았을 정도로 일찍 도착해버렸다. 어떻게 지리도 하나도 모르는 데, 일찍 도착할 수 있었을까. 바로 네이게이션. 편리한 세상이다.
서울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4년 전 12월 인도로 여행을 가기 위해 비자를 받으러 갔었다. 따뜻한 남쪽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서울의 칼바람은 너무나도 매서웠다. 빛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출근 시간의 이른 아침의 바람은 더욱 그러했다. 손과 발이 어는 듯 했고, 타려는 택시는 너무나 잡기 힘들었다. 그 후 처음 오는 서울이었다.
결혼식장엔 오랜만이었다. 아주 꼬마이던 시절, 꼬마정장을 입고 난 이후 비교적 어른이 되어 정장을 입고 격식을 차려 이런 자리에 온 일도 처음이었다. 정말 너무나도 본 친척들 중에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느낌으로나마 기억하는 친척들이 있는가하면, 너무나 뚜렷히도 기억하는 친척들도 있었다. 어른들은 으레 내게 많이 컸다, 이제 결혼해도 되겠다 라면서 자신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꼬마였을 때 봤으니 다들 그리 물어보는 것이 당연하다.
결혼식은 내게 너무나 지루했다. 안에서 지켜보는 것이 지루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에 내 눈에 띄는 풍경이 있었다. 관람차와 롤러코스터가 보이는 어린이대공원. 문득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과 형제가 없는 외동. 이 두가지는 내가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친구처럼 느끼게 된 이유일 것이다. 어려서는 지금처럼 혼자 있는 시간에 집에 있기 보다는 밖으로 돌아다니길 잘했던 것 같다. 집안이 벌컥 뒤집혀 온 친척들이 날 찾아다녔던 일도 있었다. 어린이대공원도 그런 '밖으로' 의 기억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조그마한 집 안 보다는 밖으로 나가길 좋아했다. 많지 않는 친구들과 오락식을 자주 갔었는데, 오락실을 함께 가던 친구들은 아니었다.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기억 속의 친구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러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떠오를 일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질이 좋았던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거의 확실한 느낌. 분명 그 느낌에 지금이라면 큰 돈은 아니었지만, 나쁜 느낌 속에 '돈' 에 관련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친구였다. 썩 질이 좋지 않았던 친구. 그러나 어울리게 된 친구. 그 친구의 집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작고 좋지 않으며 정돈되지 않고 난잡한 느낌의 집. 무언가 비밀스런 공간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했던 것 같다. 음침하다기 보다는 어쩐지 소굴 같은 분위기의 집이었던 것 같다. 아주 키 작은 꼬마의 기억 속에 느낌이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당시엔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다. 서울은 내게 지금보다도 더 회색빛의 도시였고 공간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분위기의 친구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내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기억에 중심에 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어울리던 시기,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단 한가지 어린이대공원에 간 기억이 강하고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다. 몇날 며칠을 어린이대공원에 갔었다. 어린 남자 아이 둘이 매일같이 어린이대공원에 갈 돈이 어디에 있었을까. 나쁜 '돈' 에 관한 기억의 느낌. 아마 어린이대공원에 갈 돈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었던가 그러했던 것 같다. 기억이 뚜렷하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다. 항상 뚜렷하지가 않고 어떤 느낌이었는지만 기억이 난다.
어린 남자 아이 둘이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수십번씩 탔던 놀이기구가 있었다. 다람쥐통. 중앙에서 여러 가닥의 선이 연결되어 있고 그 끝에 햄스터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통 같은게 달려 있고 중앙에서 돌아가면서 통도 360도 돌아가는 그런 놀이기구였다. 요새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타고 타고 또 타고. 연속으로 몇번을 내리 탔었다. 어지러움은 그리 심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재미가 더 컷기 때문에, 그러했기에 연속으로 여러번을 내리 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람쥐통만을 계속 타면서 여러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다 또래의 괜찮은 여자 아이들이 탈 때면, 흘깃 쳐다보며 우리는 관심을 받으려 했던 것인지 여러번 탓던 것을 좀 더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도 얼핏 떠오른다.
어린이대공원의 기억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그 친구가 중심에 있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친구. 얼굴까지 떠오르지 않는 친구는 없는 것 같은데, 희미하게라도 기억이 나련만 그러지가 않는다. 형태도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그 순간에는 정말 즐거워했을 것이다. 유일하게 그 시기에 어울리게 된 친구. 친구라고 하기도 뭐한 친구. 느낌과 약간의 기억으로나마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사진을 꺼내어 보며, 어린이대공원과 그 친구가 떠올랐다. 높에 곳에 올라 어린이대공원을 본 적은 없었지만, 어린이대공원이라는 단서가 주어지는 순간 그 시절의 느낌과 영상이 스쳤다. 기억이나 느낌, 그리고 사진이라는 단서.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가 사진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며 내게 자신이 생각하는 사진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사진은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야". 온전하게 그 친구가 한 말의 문장이 아니지만, 대충 이러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사진을 통해 추억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사진을 찍는 일이 좋다는 것 같다. 당시 찍은 사진을 보며 다시 기억 속의 상황과 느낌을 꺼내어 볼 수 있으니.
하지만, 어린이대공원의 기억 속에 있는 친구와 찍은 사진은 없다. 그래서 그 친구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왠 일인지, 이 사진을 보자마자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더불어 그 당신의 나의 모습, 느낌, 분위기도. 왠만해서는 떠올리지 않을 그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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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텔레토비 동산인가요? ^-^
네, 매일매일 보는 곳!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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