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소녀를 만나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겨울, 힘들 었던 때가 있었다. 가슴앓이를 하며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던 때였다. 무언가 마음이 심하게 다치거나 쓰이면 바로 몸이 아프던건 여전했기에, 당시에도 얼마간을 앓아댔다. 집 안에서만 틀어박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앓아대다 설이 돌아와 시골에 가야 해서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가게 되면 항상 서점에 들렸기에 지친 마음에도 서점으로 갔다. 그 곳에서 내 눈길을 한번에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어떤 한 소녀의 모습이 담긴 책. 그 책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이었다.

대부분 인터넷 사이트를 가입할 때면 비밀번호를 잃어버렸을 때 찾기 위해서 만드는 질문이 있는데, 나는 거의 대부분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을 질문으로 선택하고, 답은 '행복론' 을 쓴다. 답을 그렇게 쓰듯이 분명하게도 행복론은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다. 당시에 책을 읽으면서 위안과 평안을 느꼈고, 덜 힘들어지게 됐으니까.. 하지만, 책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순전히 그 책을 샀던 건, 달라이라마가 쓴 책이어서가 아닌 표지의 소녀의 모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순간에 날 사로 잡았던 그 모습.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난 그 책을 들 수 밖에 없었고, 그대로 들고 계산을 해버렸다.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평온 했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명절을 보내는 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힘든 생각이 떠오를 때면, 다시 보기를 거듭했다. 책 안에는 평안을 주는 사람들의 사진이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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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틱낫한의 평화로움>,  또 틱낫한 스님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같은 느낌의 사진들이 삽입 된 책들이었다. 그제서 이 사진들을 찍은 사진가를 알게 됐다. 그는 2008/01/28 - [something/photograhers] - 순수함을 찍는 사진가 Phil Borges 였다.

첫 인도 여행, 시작은 델리의 번잡함과 혼란 속 이었다. 그러다 티베티안 꼴로니를 갔는 데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무지막지한 소음도 없었고 델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 공기도 훨씬 좋았다. 무엇보다도 나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도의 맛 없는 음식과 달리 뚝빠와 같은 우리나라 칼국수나 만두와 같은 음식들도 있어서 더 친밀감이 들었었다.

뜻하지도 않게 한국으로 일찍 돌아가게 됐던 세번째 인도 여행의 떠나는 전 날, 나는 다시 그 곳을 찾았다. 첫번째 인도행에서 가곤 3년만에 찾는 곳이었다. 여전히 평화로웠다. 그 곳은 인도가 아니었다. 인도의 때가 묻어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곳은 익숙하고 나와 더 닮은 곳이었다. 그 곳에서 난 어느 한 꼬마 여자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분명 느꼈던 적이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어디서였을까, 언제였을까.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행복론' 의 소녀의 사진을 봤을 때의 느낌. 분명하게 그 느낌이었다.

야크도, 천막도, 히말라야도, 고원 지대에서 살아간다는 흔적인 얼굴의 선홍빛도 없었다. 현대식의 예쁜 원피스를 입고 머리도 정갈하게 묶고 있었다. 티벳 고원의 자연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인도로 넘어와 델리 외곽지역에 거주촌을 만들어 시멘트 건물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아마도 그 곳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런데도 난 티벳 고원지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티벳 소녀의 모습을 보았다.

정말로 '티벳' 을 만난 적은 없다. 라싸에도 가보지 못했고, 티벳에 근접한 곳이라면 '리틀 라싸' 라고 불리는 '레' 에 가본 적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내가 느낀 '티벳' 과 나를 매료시키고 평안을 주었던 그 '티벳' 을 만났다. 내가 동경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꼭 가려고 마음 먹은 티벳을 나는 느꼈다. 생각이나 했던가. 나는 라싸에 가지 않았지만, 티벳을 느꼈고 티벳에 갔다.

난 아마도 언젠가 티벳, 그리고 라싸에 가게 되겠지만, 사실 난 꼭 가야 될 이유가 없어졌다. 이미 나는 마음 속으로 티벳을 느꼈으니. 내가 찾고자 했던 걸 찾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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