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미소를 보여줘 2탄


고산병에 지쳐 아무 것도 안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레에 왔으니, 레 성(Leh Palace)는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기어코 올라가서 보고야 말았다. 레 성에서 바라보는 레 전경은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하지만, 뭐랄까 옛 라다크의 위상이라던지 감흥이라던지 것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아, 나는 메마른걸까.

별다른 감흥을 갖지 못하고, 나는 레 성을 내려왔다. 다 내려올 때 쯤에, 어쩐 일인지 좁은 골목길 속 건물의 위를 올려다 보게 됐다. 어?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화분이 놓인 창가에 가만히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와.

어디 유럽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비록 유럽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영화에서 보면 그렇더라는. 레에서 화분이 놓인 창가에서 턱을 괴고 골목길을 바라보는 소녀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왠지 상상이 안가지 않는가)이었다. 나, 설레어야 하는 걸까. 레에 와서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이쁘장한 소녀와 눈을 마주친 것이다. 두근두근. 

내게 레 성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날 설레게 하고, 가슴 뛰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만남. 사람이고 소녀인 것이다. 아, 소녀라고 해서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길. 예쁜 소녀를 보고 가슴 설레지 않는 남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나와 함께 있던 동행은 이미 저만치 가버렸다. 난, 동행과 걸음을 같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소녀에게 인사하며 다가가 소녀의 창문 아래로 갔다. 이름을 내가 물어봤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째서, 난 이럴까.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 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어쩌면, 짧은 인연 그 걸로 충분하다는,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는 것을 바랬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던지간에 난 위를 올려다가 보며 인사를 건네고 별 말 없이 미소를 보였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수줍어 했다. 수줍어 하는 모습까지.. 수줍은 소녀에게 난 웃어보라고 했다. 처음엔 더없이 수줍어 하더니, 이내 미소를 보여줬다.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그 미소가 가식은 아니란걸 알았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어떻게 웃어야 할지, 미소를 보내야지 할지 몰라 어설프긴 했지만 분명히 밝고 따뜻한 미소였다.

힘들었지만, 귀찮았지만 레 성으로 간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레 성을 보아서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레 성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내려올 일도 없었고, 내려오면서 소녀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가지 않았더라면 이 인연, 만남에 대해 알지 못했을테니 후회하지도 않았겠지만, 이런 만남을 갖게 난 후에 생각 해 보면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너무나도 후회 했을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여행은 역시나 인연이고 만남이다.


+ 늦었지만, 모두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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